조은정공 박봉해 대표/“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키워
일당 백인 직원들과 합심해서 최선을 다하고 사회 공헌할 일에 적극 참여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5년 07월 27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조은정공을 찾았다. 공장 건물 안을 기웃거렸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열심히 기계 앞에서 뭔가 조작하고 있었다. 장엄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계들을 슬쩍 살펴보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저는 체질적으로 기계가 몸에 맞아서 전자 쪽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2000년 덕계동에서 조은 정공을 시작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키워 왔습니다.” 박봉해 조은정공 대표의 얼굴은 선량하기 그지없다. 회사 운영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서희자 이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남편인 박 대표의 말에 깊은 공감을 표하고 있다. 축축한 날씨임에도 사무실에는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함께 힘든 시기를 겪고 극복한 부부만이 풍기는 분위기이랄까. 사업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힘든 시기를 겪는다. 박 대표도 마찬가지. 조은 정공은 배에 들어 온 해수에서 플랑크톤 등을 제거하는 필터, 특장차, 비행기 견인차에 들어가는 엔진부품을 가공했다. 직원도 늘어나고 크게 성장했지만 2005년 부도를 낼 만큼 사업이 휘청거렸다. 사업을 엎어야할 판이었다. 그때 서 이사가 회사에 뛰어들었다. 회사 살림도 살고 생판 모르는 금형 기계일도 했다. 일일이 손으로 하던 금형을 NC선반, M·C·T밀링으로 교체했다. 전 자동 프로그램으로 부품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단가도 내려갔다. 서 이사는 회사 살림을 도맡고 박 대표는 열심히 공장에서 일했다. 사업도 점점 안정권으로 들어섰다. 15년이 훌쩍 지났고 지금은 주남 산단에다 공장을 만들고 있다. 2017년 입주다. 사업을 하는 사장들에게 가장 뿌듯한 일은 자신의 공장 건물을 가지는 것. 그것은 최고의 기쁨이다. 박 대표의 얼굴이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것은 당연. 한 마디로 박 대표는 자수성가한 셈이다. 본가가 어려워서 전세금 일천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이만큼 사업체를 끌어올렸으니 성공한 것이 아닌가. 젊었을 때 롤라스케이트와 기계체조 선수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지금도 배드민턴를 치면서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기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은 소수지만 일당 백입니다.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일해 줍니다.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도와주고 머리를 맞대고 해 줍니다. 호흡이 잘 맞아서 일도 잘되고 남들한테도 잘해 줍니다.” 박 대표는 직원들에게 잘해 줘야 그들이 기분이 좋아서 일도 잘해 준다고 강조했다. 조은정공은 얼마 전, 특장차 업체 트랙터에서 제설차 부품을 개발해서 성공했다. 수주를 받아 놓은 상태다. 곧 납품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요즘 경제가 많이 힘들다. 중공업에서 일이 많이 줄어든 셈이다. 특장차하고 같이 개발을 하고 있다. 비용은 그 업체보다는 많이 안 들지만 투자비가 꽤 들어간다. 하지만 계속 개발을 해서 공장을 더 키우고 아이들이 잘 성장하길 바란다"며 “이제는 생활이 조금 안정적이다.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단체의 사무장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사회에 공헌할 일이 있으면 가능한 참여할 생각이다. 집에 압류가 들어올 때 아이들이 꿋꿋하게 버텨주고 회사 일이 힘들어서 잘해주지 못했는데도 잘 자라준 것이 너무 고맙다. 지금 나아졌다 해서 태만해지면 다시는 재기하기 힘들다. 직원들과 합심해서 늘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
김경희 기자 /  입력 : 2015년 0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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