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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의 역사를 말하다(6)>공비들에 의해 살해된 웅상 양민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5년 03월 16일
↑↑ 웅상지역을 에워싸고 있는 천성산과 대운산에 당시 공비들이 숨어 살았다
ⓒ 웅상뉴스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강대국과 정치지도자란 사람들에 의해 혼돈의 도가니속이었다. 우리 웅상지역도 예외 일 수는 없다. 대운산과 천성산에는 무장 공비들이 통일 공산국가 건립을 위해 투쟁한다며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이들은 산속에서 식량이나 생활물자를 공급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속 마을이나 산 인접 마을 민가에 무장한 채 내려와 주민들에게 위협을 가해 필요한 물건을 빼앗아가고 불응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목숨도 앗아갔다. 공비들은 대체로 밤이면 괴롭히고 경찰들은 공비들에게 쌀 한톨 성냥 한 개비라도 준 사실을 알게 되면 공비와 내통한 자로 몰아 심한 고문을 가하고 처형대상이 되기도 했다. 공비도 경찰도 다 주민들에게 공포 대상이었다. 공비들의 행적을 경찰에 신고하면 공비들에게 보복을 당하게 되고 경찰의 행적을 공비들에게 알리면 경찰에게 보복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양편의 행적을 알고도 알리지 않으면 그것 또한 처벌 대상이 되어 주민들의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국민의 죄는 대한민국 선량한 국민이 된 죄 뿐이다. 당시 외산마을 이장이였고 이후 웅상면의회 의원으로 재임했던 서달준은 마을 분들에게 경찰의 행보도 공비의 행보도 불가피하게 공비들에게 물건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해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마을 주민들에게 신신 당부를 해 화를 당할 사람도 화를 면하게 했다한다. 경찰은 주민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당번제로 밤마다 서창지서를 겹겹이 에워싸고 대창을 들고 경찰관을 위해 보초를 선 때도 있었다한다. 공비들은 산 속에서 배가 고프니 식량도 약탈해 가고 소도 몰고 갔다. 매곡의 민영언 집에서 앞에서 소를 몰고 가는걸 민영언의 어머니가 이를 보고 “우리집의 소다”하면서 달라고 애원했으나 총을 겨누며 사살하려고 해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왔다 한다. 명곡에서도 소를 잃은 사람도 있고 편들 신영식 집은 온양읍 내광에 살다 공비들이 소를 빼앗아 몰고 가고 식량도 번번이 달라하고 이애 저항하는 어머니는 공비들에게 맞아 혼절 한때도 있었다. 그 가족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불안해 살지 못해 편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매곡 전골에 살던 가구들도 집을 버리고 이거하게 되었고 외홈마을도 일시 이전했다가 휴전이 되고 다시 돌아와 살게 되었다. 용당 신수식은 중학교 1학년 때 내광산에 나무하러가 공비들에게 대운산 공비 아지트로 끌려가 여러 날 나무일 등 잔심부름도 해주다 나무를 하러 간 어느 날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했다한다. 공비들은 “자기들이 곧 남북통일이 곧 다가올 것”이라면서 “그때 너는 영웅대접을 받게 되고 국비로 유학까지 보내줄 것이고 너는 틀림없이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며 “고생스러워도 조금만 참고 싸우자”하며 세뇌를 시켰다. 공비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인원들이 주둔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밥심부름과 청소를 하는 예쁜 여학생도 있었다. 여학생은 그들의 꼬임에 현혹되어 있는 듯 했다. 공비들은 자기들에게 조금만 잘못보이면 죽이고 불지르고 하였다. 공비에 의해 집이 소실된 집은 주남, 백동 등 여러집이 있다. 1949년 12월 24일 현 당촌마을 회관 위치한 근처에서 용당과 당촌마을 이장이 주관하여 주민을 모아 공비들의 출현을 막기 위한 회의를 하는 도중 공비들이 나타나 용당이장 박주상과 당촌이장 박정순(박개웅의 부)을 끌어내고 참석한 주민들의 손을 잡아보고 손이 억센 사람은 살려두고 당시 부산대학교에 재학중이던 박주원은 손이 억세지 않다는 이유로 “너 호강스럽게 살아온 부르조아구나” 하며 끌어내어 3명을 즉석에서 사살했다. 주남리 이재형(이재용 부)은 경찰관직을 그만두고 촌부로 살아가다 공비들에게 전직 경찰관이라는 이유로 지목 대상이 되어 1951년 6월 30일 어둠이 시작될 무렵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데 공비가 나타나 강제로 끌어내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괭이와 삽으로 쳐 죽이고 집까지 불 지르고 했다. 당시 거주했던 집은 주남 상동이었다. 같은 날 소주 이인걸도 공비들에게 살해 되었다. 주진 상부락에서 김충희가 공비들에 의해 살해 될 당시 상황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웅상노인복지회관 박천수관장의 증언에 의하면 1949년11월경(초겨울이라고 함) 당시 박천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고 한다. 공비들의 출현을 막고 출현시 대응책에 관한 주민들의 행동지침을 경찰서에서 나와 수시로 교육을 시켰다. 경찰서에서 마을별로 경비대를 조직 운영하도록 하여 경비대가 조직되어 마을 자체 경비대원들의 대기소가 상부락에는 박천수집 사랑방이었고 중간마을에도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그날 경찰서에서 경비대원들의 교육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마을 전체 경비대원들이 박천수 사랑방에 모이도록 연락하였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경찰복장을 한 공비가 그날 낮에 마을 경비대원 연락책임자를 만나“신규 발령받은 직원이라 소개하고 오늘 저녁 중요한 교육 계획이 있다”하며 대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조치하라 명령하고 갔다. 순진한 경비대원들은 공비들에게 속은 것이다. 연락을 받은 대원들은 박천수댁 사랑방에 모였다. 박천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팔송 금정중학교까지 걸어다님) 마을 어귀부터 경찰들이 총을 메고 서있고 집근처에는 더 많은 경찰들이 둘러 서 있었다. 공비들이 내려왔나 하는 의아심을 가지고 집에 들어오니 평소 보다 훨씬 많은 신발이 사랑방에 놓여 있어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방 복판에 총을 세워두고 그 앞에서 공비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두려워 문을 닫을까 하는데 공비가 학생 들어와 하기에 마지못 해 들어갔다. 교육내용은‘자기네들이 목숨걸고 하는 과업이 공산국가 통일을 위한 과업’이라며 자기네들이 틀림없이 승전 할 것이며 그 시기도 멀지않고 자기네들이 승전하면 통일국가인 지상낙원이 되고 토지 무상배급에 계급없는 사회 빈부없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한다 어렵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좋은 세상이 올것이라 하며 자기네들에게 협조하고 자기들의 움직임을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교육을하는 순간 다른 공비들은 부자집을 찾아 다니며 식량이며 된장 고추장 필요한 물건들을 마치 자기들 것인양 활개치고 모우고 있었다. 교육에 참석하지 않은 여인들과 노약자들은 착하게도 평소 경찰들이 교육시킨 행동지침대로 징을 울리고 대창을 들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앞으로 다 모이고 있었다. 김충희는 해양대학 재학중인 학생으로 초중등 학교 보다 먼저 방학을 맞이해 집에 막 당도하는 날이였다. 교복차림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인곳으로 나오니 산쪽에서 경찰복장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여러명 오면서 마을 주민들이“빨갱이들 몇 명이나 나타났어?”하며 물으니 김충희는“우리집에 빨갱이들 여러명 왔다 갔다”하는 말이 떨어지자 말자 김충희에게 총을 쏘아 죽였다.
김충희는 즉사하여 도랑 쪽으로 떨어지는 처참한 광경도 생생하게 목격했다 한다. 마을분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 공비들이 김충희를 사살한 동기는“우리집에 빨갱이가 왔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김충희는 인물도 출중했고 키도 훨씬하게 크고 참 멋이 있었다. 누구나 보아도 귀공자 모습이었다. 가진자에 저항하는 것이 그들의 과업이다 보니 귀한 모습인 김충희를 보는 순간 부잣집 자녀임이 확실해 저항의식이 발동되어 총을 쏘앗을 것이다. 경찰의 주민 행동지침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지침인가 총을 들고 수류탄을 소지하고 다니는 공비들에게 대응하라는 지침은 총에는 대창으로 싸우고 수류탄에는 돌로 싸우라는 것이다. 징을 울려 사람들이 모여 아우성 하는 모습은 옛날 호랑이가 사람 물어갈 시절 호랑이를 마을에 근접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주진 김맹준의 아버지 김병환은 전투경찰에 있다가 제대를 하고 집에 있다 어느날 부산에 볼일 때문에 경찰복을 입고 나들이를 하다 영천 어느 지점에서 버스에 타고 있다 공비들에게 끌려가 사살 당했다. 휴전이 되고도 대운산과 천성산에는 공비들이 근거지를 두고 잔악하게 주민을 괴롭혔다. 결국 공비토벌을 위한 백골부대가 웅상에 주둔하며 공비를 소탕했다. 공비소탕 과정도 장기간 지속되어 주민들은 그들의 뒷바라지에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백골부대원에게 쫓기던 공비들이 갑자기 마주친 매곡마을 주민에게“어디로 가면 숨을 곳이 있느냐”하는 물음에 생명에 위협을 느껴 화급하게 어느 방향으로 가르킨 손짓으로 인해 서철석 아버지와 서일수 아버지는 공비를 숨겨 줬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백골부대원들에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사살되었다. 우리 웅상면 주민은 보도연맹가입자들이
↑↑ 웅상지역을 에워싸고 있는 천성산과 대운산에 당시 공비들이 숨어 살았다
ⓒ 웅상뉴스
오강환의 용기로 생명을 구제받을 수 있었지만 보도연맹이나 여타 사유로 죄 없는 양민들이 국군과 경찰관에 희생된 경우도 많다. 우리 지역은 국토 최남단이라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이 직접 교전한 지역은 아니였지만 전선아닌 전선이 되어 불안을 안고 살았다. 학교마다 임시국군병원과 피난민 수용소가 되었다.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시 우리지역까지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국도 옆에는 포탄을 즐비하게 설치해 두었다 한다.

 
ⓒ 웅상뉴스 

■약력 시인 박극수(현)
웅상지 편집위원장
전 웅상농협 조합장
웅상주부합창 단장
천성산문학회 회장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5년 0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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