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5-02 오후 04:40:0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오피니언

‘미래를 보고 싶으면 한국에 오라.’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3년 12월 09일
ⓒ 웅상뉴스
며칠 전 미국의 CNN방송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고인 10가지를 선정했다.
그러면서 세계인들에게 “미래를 보고 싶으면 한국을 방문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미래를 보려면 반드시 먼저 과거를 봐야한다.
1636년 12월 1일 후금(後金, 淸)의 심양엔 청 태종이 친히 지휘하여 조선을 치기 위하여 10만 명의 날래고 억센 군사들이 모여 출정식을 하였다. 그들은 바람 같이 12월 14일, 개성통과. 12월 16일, 남한산성을 포위하였고, 다음해 1월 30일 삼전도에서 인조의 항복을 받아내고 수많은 조선인들-틀림없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을 포로로 잡고 썰물처럼 돌아갔다. 명(明)과의 건곤일척을 앞두고 후방의 화근을 미리 없애기 위함이었다. 대 성공을 이룬 그 치밀하고도 전격적인 전쟁으로 조선은 그토록 오랑캐라고 얕보던 여진족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스스로 신하가 되길 청하였다. 병자호란의 주역인 청 태종 ‘홍타이지’의 조상 ‘몽거 티무르’는 조선 초기에 이미 귀부한 적이 있었고 군신 관계를 맺었다. 서울에 두 차례 와서(1395년, 1404년)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을 알현하기도 했다.
『태조실록』태조 4년 9월 8일에는 ‘오도리(吾都里)의 상만호(上萬戶) 몽거티무르(童猛哥帖木兒) 등 다섯 사람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라고 기록 되어있다.
그로부터 약200여년 후인 1592년, 조선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후금이 군신의 예로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조선의 조정은 ‘오랑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며 거절한다. 그러나 엄혹한 국제질서는 ‘조용히 시나 짓고, 책이나 읽는 조선’을 그냥 두지 않았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문에 망해가던 조선을 다시 살렸다’는 ‘은혜’를 내세워 만주와의 싸움에 조선을 계속 끌어 들이려 했다. ‘지는 해’인 명을 위해 만주의 후금과 싸울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여 ‘뜨는 해’인 후금을 편들 것인가?
냉혹한 선택 앞에서 조선은 분열된다. 명(明)나라를 향하여 ‘아버지가 늙었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수구파’와 새로운 세력인 후금(淸)을 따라야 한다는 ‘혁신파’로 나뉘어 분쟁만을 일삼고 있었다. 결국 1626년의 인조반정은 명분만을 강조한 채 ‘망해가던 명’을 선택한 쿠테타였다. 후금은 다음해 즉시 조선을 침략하니 ‘정묘호란(丁卯胡亂)’이었고 조선은 아우가 되는 ‘형제관계’를 맺어 위기를 봉합하였다. 그럼에도 계속 명나라의 편을 들다가 결국 10년 뒤, 병자호란에서는 조선은 ‘군신의 예’를 다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려 항복을 하였다. 조선의 봉림대군과 소현세자, 수많은 조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최명길은 “청군이 항복을 받고 정축년 2월 15일 한강을 건널 때 포로로 잡힌 인구가 50여 만이었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은 “심양(瀋陽)으로 끌려간 사람은 60만 명인데 몽고군에 붙잡힌 자는 여기 포함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있다”고 썼다. 당시 1천만 명 정도인 전체조선 인구의 6%가 전쟁포로 끌려갔다. 곧 200명중에 1사람꼴로 여자는 성적 노예로, 남자는 명군의 화살바지로 끌려갔으니, 임진왜란 이후 겨우 45년이 지났을 뿐이다. 유독 추웠던 그해 겨울에 2천리가 넘는 길을 채찍을 맞으며 끌려가는 조선인 포로들의 삶은 처참했다.
언 살에 채찍을 맞아 살이 터지고 도망이라도 치다 잡히면 발뒷꿈치를 잘렸다. 일단 압록강은 건넌 포로가 고향을 찾아올라치면 조선 조정은 다시 잡아 청나라에 넘겨야만 했다. 포로들은 남녀 옷을 모두 벗기고 건강 상태를 본 뒤 값을 치르고 노예로 팔려나갔다. 소현세자는 ‘심양장계’에서 “속환에 요구하는 값이 비싸기 그지없다. 많으면 수백 또는 수천 냥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희망을 잃었고, 울부짖는 소리가 도로에 가득 찼다. 날마다 관소(館所) 밖에서 울며 호소하니 참혹하여 차마 못 보겠다.”고 하였다.

결국 수많은 정보처를 두고 국제정세를 내다보던 광해군의 균형외교는 무시되고 명나라 일변도의 조선이 되어 병자호란의 비극이 발생 한 것이다. 인조와 그 일당의 판단 착오로 그토록 무시하던 오랑캐 나라의 수장인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 비극’이 발생되었다. ‘몽거 티무르’로부터 청 태종 ‘황태극’까지 단 7대 만의 무상한 역사적 현실이다.
1905년, 조선은 결국 일본에게 망하고 만다. 결국 나라의 흥망에는 시간과 공간이 다르지만 엄정하고도 일정한 패턴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드는 외우내환(外憂內患)이다. 그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현재의 우리 국민의 의식과 내외의 현실이 당시와 다르지 않다.
14억의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중국은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급속한 경제성장과 대국의 힘을 바탕으로 정치, 군사적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G2로 떠오르고 있다. ‘아베’수상의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우경화로 치달리며 자본과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능멸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이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이에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댜오이다오(釣魚島)의 영유권을 놓고 영해와 영공에서 벌이고 있는 우리와 중국, 일본 삼국의 첨예한 갈등은 동아시아를 다시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또 다시 동양 삼국은 역사의 법칙 속으로 확실하게 흘러들어 가고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은 과거가 아니다. 틀림없이 살아있는 현재진행이며, 미래이다. CNN방송의 우호적인 소개와 한때의 인기 있는 한류와 약간의 경제적 성공으로 우쭐할 여유가 없다.
여당과 야당, 청와대와 국민은 이제야 말로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무리 ‘진보가 맞다, 보수가 맞다’도 나라가 망하는 무서운 진실 앞에 서면 태양 앞에 한 점의 촛불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은 “모두가 하나 되어 더 늦기 전에 바람직한 미래를 현실에서 창조 해내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목이 쉬도록 외치고 있다. 아무리 ‘좌익이 옳다, 우익이 옳다’ 해도 몸통은 반드시 홍익(弘益)이 되어야 비상할 수 있고, 그래야만 세계 앞에 당당하게 생존 할 수 있다.
월남전의 영웅 채 명신 장군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병의 묘역에 묻혔다.
대한민국 기득권의 유명인들이여!
들리는가? 보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국민의 이 외침을!

/사) 국학원 원장(대), 전국 민족 단체 협의회 대표회장, 웅상뉴스 칼럼위원, 원암 장영주
웅상뉴스 기자 / 입력 : 2013년 12월 09일
- Copyrights ⓒ웅상뉴스(웅상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포토뉴스
생활 정보
“처음엔 집에서 보이차를 즐겼는데,.. 
부동산
울산 울주군 웅촌면 곡천지구에 들어.. 
민간이 시행하는 웅촌곡천지구 도시개.. 
사람들
27년 된 JIC웅상청년회의소의 2.. 
단체
(사)양산시웅상상공인연합회는 지난 .. 
따뜻한 이웃
웅상시니어클럽(관장 엄수연)이 지난.. 
지역행사 일정
많이 본 뉴스
“웅상과 불과 5분 거리, 웅촌 리버스테이트 주목하라”..
“인문학은 나와 이웃을 돌아보는 삶의 공부입니다”..
양산시의원 보궐 선거에 이기준 후보 당선..
박희숙 제7대 (사)한송예술협회 이사장 취임 인터뷰/ “한송예술협회, 예술로 여는 열린 공간”..
“아이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양산에서 실천하겠습니다”..
2025 제21회 양산천성산철쭉제 5월 4일 열린다..
역시 동원과기대!! 쌀케이크부문 우승!!!!..
[인터뷰] 웅상새마을금고 홍주철 이사장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금고의 주인입니다”..
2025년 경남 종별 선수권 태권도와 축구대회 열린다..
“청소년이 행복한 도시, 시민이 함께 만들겠습니다”..
신문사 소개 고충처리인제도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개인정보취급 편집규약 윤리강령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찾아오는 길
상호: 웅상뉴스(웅상신문) / Tel: 055-365-2211~2,364-8585 / Fax : 055-912-2213
발행인·편집인 : 웅상신문(주) / mail: news2022@hanmail.net, news2015@naver.com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 2길 5-21 207호, (기장)부산시 기장군 월평1길 7, 1층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아00194 인터넷신문 등록일:2012년 7월 1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철근
Copyright ⓒ 웅상뉴스(웅상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8,025
오늘 방문자 수 : 10,706
총 방문자 수 : 26,763,434